[정원산책] 모던 정원, 선(禪)의 정원
[정원산책] 모던 정원, 선(禪)의 정원
  • 박경자 전통경관보전연구원장
  • 승인 2017.08.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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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손에 넣은 이들이 바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의 편안함’

▲ 박경자 전통경관보전연구원장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 1896~1975)는 20세기에 활약했던 정원가이며 일본의 가레산스이정원을 모던화했고 전통 일본정원의 ‘영원한 모던’을 표방했던 독창적인 정원가다. 그는 미술교육을 받았고, 독학으로 끝없는 정원현장조사를 통해서 일본정원을 연구했던, 깨달음을 얻는 경지의 선(禪)을 생활화한 선승(禪僧)이었다.

차, 꽃꽂이, 정원 등 생활예술 중심으로 고전예술을 연구 했고, 칸딘스키, 마티즈 등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의 영향을 받았다. 40대 이후 200여개의 정원을 만들었다.

그의 석조 중심의 정원은 12세기 정원서인 작정기의 ‘입석(立石)’에서 영향을 받았고, 지표 디자인에서 이끼, 섬그림자, 스하마(바닥에 잔자갈을 까는 수법)은 칸딘스키 등 전위미술에서 영향 받았으며, 곡선과 곡수(曲水)가 사용됐다.

가쯔라리큐 영향 등 고전을 완전히 파악하고 고전을 심플하게 단순화해서 재해석하여 모던화했고, 입지를 읽고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을 모토로 동서양 정신을 융합했다. 바닥에 잔디나 관목을 사용해서 격자모양으로 만든 ‘市松의 정원’도 유명하다.

정원에서 봉래 신선 사상을 컨셉으로 하여,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정원 이상을 추구했다. 주변 풍경을 거절했고, 토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정원에는 차경이 없다. 단지 대나무 담장 정도만 있다.

특히 대표작으로 토후쿠지(東福寺) 호조(方丈) 핫소 정원(八相庭)이 유명하다, 토후쿠지의 호조는 동서남북 사방이 모두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유일한 것이라 한다. 호조 정원의 이름은 핫소 정원이다. 부처님의 삶에서 일어난 여덟 가지 중요한 사건(八相成道)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시게모리 미레이가 1939년에 만들었다

호조의 정면에 있는 남쪽 정원은 4개의 정원 중 가장 인공적인 느낌의 작품으로 천국의 섬을 상징하는 4개의 암석 복합물로 구성됐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며 에이주, 호라이, 코료, 호조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고 모래 정원인 하카이(8개의 거친 바다를 뜻함) 위에 놓여있다. 서쪽의 오른쪽 모퉁이에는 이끼로 뒤덮인 5개의 신성한 산이 있다

시게모리 미레이의 모던정원에 이어서, 마스노 슌묘(枡野俊明, 1953~ )는 선(禪)의 사상과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심플함을 추구하며 정원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 몇 해 사이 선(禪)의 정원을 의뢰하는 유럽과 아시아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무 것도 없는 정원을 만들어 주세요. 마음이 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선의 정원’을 만들어 주세요”하는 의뢰를 자주 받는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그들이 마지막에 바라는 게 바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만들어내려면 무언가를 둬야만 한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그냥 넓은 토지에 지나지 않다. 거기에 무언가를 둬야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느낄 수 있다. ‘유는 무, 무는 유’가 되는 것이다.

‘선의 정원‘ 디자인은 더 이상 도려낼 수 없는 한계까지 불필요한 것들을 도려내려 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원에는 단 몇 개의 돌만이 놓인다. 이것이 선의 정신이며 일본인은 예로부터 그런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완성된 정원을 보고 그들은 진심으로 감탄한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공간입니다.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풍경이랄까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그들이 바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의 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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