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 도예명인, 남해 이순신순국공원에 대형 도자기벽화 세워
이호영 도예명인, 남해 이순신순국공원에 대형 도자기벽화 세워
  • 이종환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7.03.18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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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5m 길이 200m에 이르는 세계 최대규모..노량해전 그려
▲ 이순신순국공원 대형벽화에 야간 조명이 켜져 있다. 오른쪽으로 분수가 보인다.

한려수도에 속하는 경남 남해에 기네스북에 오를 명물이 설치된 새로운 공원이 오는 4월28일 문을 연다.이순신장군이 순국한 관음포 해안에 만들어진 이순신순국공원이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 출정해 순국하기까지를 대형 도자기 벽화로 그렸어요. 높이 5m, 길이 200m의 대형 도자기 벽화입니다. 가로세로 50cm*50cm짜리 도자기 벽화 3천797장을 붙여서 만들었어요.”

이 도자기 순국 벽화를 제작한 이호영 도예명인의 말이다. 그는 세계한인사회와의 문화나눔운동을 하는 K컬쳐서포터즈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를 찾아 남해에 있는 벽화 작업현장으로 갔을 때는 공정이 막바지에 들어섰을 때였다. 벽화는 5m 높이에 100m, 50m, 16m, 34m 길이의 네 부분으로 이뤄져 있었다.

“도자기 벽화로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유일하게 이곳에 와야 볼 수 있어요. 남해군으로부터 도자기로 이 벽화를 만들어달라고 제안을 받았을 때 세계에서 유일한 명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해서 기꺼이 응했어요.”

이호영 도예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대형 평면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예장인이다. 남해 이순신순국공원에 만든 벽화 도자기는 가로세로 50cm이지만, 그의 작업실에는 최대 90cm*220cm의 작품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는 이 크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가마를 자체 설치했으며, 더 큰 가마를 만든다면 평면도자기 작품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평면형 도자기 제작기술로 발명특허도 받았다.

“흙을 불에 구우면 줄어듭니다. 16-22% 가량 줄어들어요. 그 과정에서 휘어지고 요철이 생깁니다. 마치 오징어를 구우면 비틀어지면서 쪼그라들잖아요. 같은 원리입니다. 이 뒤틀림을 잡을 수 있는 게 노하우입니다.”

그의 도예작업실은 경기도 이천에 있다. 우리나라 도공의 혼을 재현해내기 위해 한얼도예라는 작업실명으로 활동해왔다.

“지난 1년여간 도자기 벽화를 굽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한번 가마에 불을 붙이면 22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깜빡잠을 잘 수밖에 없지요. 1차소성, 2차소성이 있어서 22시간씩 두번을 때야 도자기 벽화 한장이 완성됩니다. ”

그는 3800장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8천여장을 구워야만 했다고 한다. 22시간씩 가마불을 땐 횟수도 90여차례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난 1년여간 잠을 설친 게 여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고생끝에 이뤄진 그의 작품은 오는 4월28일 남해의 이순신순국공원 개장과 함께 일반에 공개된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출전한 전투가 노량해전입니다. 남해대교가 놓인 그 해협이 노량해전이 치러진 노량해협입니다. 이순신장군이 그 해전에서 승리하고 패주하는 왜군을 쫓다가 이곳 관음포에서 유탄을 맞습니다. 장군이 숨을 거둔 곳에도 정자가 세워져 있어요.”

이호영 도예명인이 만든 순국공원의 벽화 작품은 출정, 승리기원, 전투, 순국,그리고 오늘의 모습으로 구성돼 있다. “그림이 살아 있어요. 노량해전 전투를 예로 들면 출렁거리는 파도와 배위에서 싸움을 하는 수군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는 방문객들이 이순신순국공원의 대형 벽화를 접하면 또다른 감동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참고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실린 ‘노량해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597년 재침한 왜군은 그 해 9월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패배한 데 뒤이어 육전에서도 고전하였다. 다음 해 8월 도요토미(豊臣秀吉)가 병사하자, 왜군은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古今島) 수군 진영을 떠나 노량 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육군장 유정(劉綎)과 수륙합동작전을 펴 왜교(倭橋)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 고니시(小西行長)의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왜군은 이를 알고 응원군을 불려들였다.

싸움은 11월 18일 밤 시작해 이튿날 새벽 막바지에 이렀다. 왜의 수군 선박 200여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 척이 이순신함대에 나포됐다. 나머지 왜군 패잔선들은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관음포(觀音浦)로 도주하는 왜군을 추격했다. 하지만 관음포에서 아쉽게 총탄에 맞고 육지에 옮겨져 숨을 거두었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는 말이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이었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鄧子龍)과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 이영남(李英男), 낙안군수(樂安郡守) 방덕룡(方德龍)도 함께 전사했다. 이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막을 내리고, 왜군은 철수했다.

▲ 이순신순국공원의 대형 도자기 벽화
 
 
 
 
 
▲ 남해 이순신순국공원. 오른쪽으로 관음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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