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자 고구마
[칼럼] 종자 고구마
  • 류현옥 재독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24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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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 유년기를 지낸 외동 마을은 김해군과 주촌면의 경계선 선지고개 아래에 있다. 고구마 밭농사를 주로 했기에 흔히 ‘물고구마 외동’으로 통했다. 동네아이들이 학교운동장에서 다른 동네아이들과 싸울 때면 ‘외동 물고구마’라고 불리며 놀림을 받았다. 우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별명이었다.

우리 동네 물고구마는 비교적 컸고 물기가 많다. 작고 단단하게 생긴 검붉은 타박고구마에 비해 모양 없이 컸고 삶으면 물이 질질 흐를 정도라 값도 쌌다. 반면에 타박고구마를 삶아서 껍질을 벗기고 두 동강을 내면 노란색의 속살이 나오고, 입에 넣으면 꿀밤처럼 맛이었다. 아쉽게도 물고구마보다 수확률이 적어 양념으로 심는 정도였기에 실컷 먹어보지는 못했다.

베를린 슈퍼마켓에 가면 감자 옆에 검붉은 고구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수확이 시작되는 가을이면 무더기로 쏟아지는 감자는 1Kg에 19센트인데, 고구마는 2유로 45센트로 12배가 된다. 분명히 수입되어 온 것 같은데 원산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감자를 카토펠이라 하고 고구마는 쥬스카토펠(단감자)라고 이름을 붙인데 있어 고구마를 모르고 자란 독일 사람들은 얼마나 단지는 모른다. 감자가 달면 어떻게 하냐는 식으로 비꼰다. 물고구마를 먹으며 자란 나와는 달리 함께 사는 얀 이조차 한번 맛을 보는 것도 거절한다.

낯선 것을 좋아하고 멀리서 온 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비싼 거면 다 가치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데서 오는 풍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지난 몇 해 사이에 고구마가 감자 옆에 자리를 잡은 후부터 호기심으로 사다가 삶아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감자는 독일 식탁에서 고기 덩어리 옆에 붙어 다니는 주식으로 우리의 쌀밥과 같은데 이 단맛의 고구마는 고기요리와 특히 중요한 소스와 맛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에 우리도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었다.

어느 날 초대를 받고 놀러간 친구 집에서 전채 요리로 고구마 죽이 나왔다. 당근과 고구마를 잘게 썰어서 올리브기름에 볶다가 채소 죽 양념을 하여 푹 끓인 후 우유 크램을 넣고 믹서에 넣어 곱게 갈은 크램 죽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북해도 호박으로 이렇게 죽을 끓이는데 우리음식에 없는 마른 허브를 넣어 맛을 낸다. 고구마 죽은 오리지널 고구마 맛을 내게 했다고 설명하는 데 고구마와 당근이 합쳐져서 색깔도 그렇고 우유 크램 맛이 압도적이라서 고구마 죽으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날 우리를 초대한 내과의사는 중국의학을 전공하여 전문인들 사이에 유명한 분인데 ‘음식이 약’이라는 중국 음식문화와 철학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는 동양인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을 두고 이런 음식 실험을 한다고 했다. 그 후 종종 고구마 죽을 먹게 되었고 나도 집에서 끓여 먹었다.

며칠 전 카우프란트에 붙은 대형 꽃집에서 화분에 심긴 고구마 잎사귀를 보게 되었다. 단고구마라는 렛델이 붙어 있었다. 점원의 설명에 의하면 고구마 줄기 끝에 아주 작은 예쁜 꽃이 핀단다. 뿌리는 물론 감자 같은 구근으로 먹기도 하지만 목적은 꽃을 보기 위해서란다.

타박고구마의 검붉은 색깔을 한 고구마 잎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내 기억에 남은 반찬으로 해 먹던 고구마 잎사귀는 둥글둥글한 것(?)으로 아는데 잎의 끝이 뾰족뾰족하다. 그리고 고구마 줄기는 길고 비교적 굵었다는 기억과 달리 짧고 가늘었다.

고구마를 심은 하나를 사 왔다. 작은 화분에 두기가 안쓰러워서 우선 큰 화분으로 옮기기 위해 들어내어 보니 벌써 작은 고구마가 몇 개나 달려 있었다. 고구마 순을 잎사귀 하나씩을 단위로 잘랐다. 꽃을 심는 긴 플라스틱 상자에 골을 파서 줄줄이 심고 원뿌리는 큰 화분에 심었다. 고향의 동네 사람들은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씨 고구마에서 자란 줄기를 이렇게 잘라 골을 지어 만든 둔덕에 심었다.

잘라 심은 고구마 줄기는 용케도 뿌리를 내리고 고구마 잎사귀는 햇볕을 받아 자라면서 땅속에 고구마를 잉태했다. 모종한 고구마 잎이 마르지 않게 매일 물을 주며 들여다보니 파릇파릇 살아났다. 화분 속에 담긴 종자 고구마도 자라는 모양으로 새잎이 나오고 잎사귀가 무럭무럭 자랐다.

예쁜 고구마 꽃이 될 꽃봉오리가 어디 살짝 나왔나 싶어 살펴보지만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고구마 동네에서 자란 나는 꽃을 본적이 없다 어머니는 고구마에 꽃이 피면 뿌리로 보내져야 할 영양분이 꽃으로 간다고 말한 적이 있기에 꽃이 피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남미의 사라진 잉카 왕국을 원산지로 여러 해를 걸러 유럽으로 들어오게 된 감자와 그전부터 이태리에서 생산되었다는 고구마와 사촌뻘이다. 주식인 감자가 1800년대에 유럽으로 들어와서 식탁에 자리를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역시 희게 피는 작은 감자 꽃으로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된 사치와 퇴폐로 역사에 남은 마리 앙뜨와네뜨 황후가 감자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 모르고 먹은 생감자가 복통의 원인으로 알려지자 독감자라는 이름이 얼마간 따라다녔다 한다. 이래서 감자는 익히지 않고는 먹을 수 없지만 고구마는 날것을 먹을 수가 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2세는 감자를 거부하는 농부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왕궁 앞에 있는 밭에 감자를 심어놓고 보초를 서게 했다. 패전으로 국고는 들통이 나고 쑥밭이 된 나라에 배를 곯는 백성들이 많았다. 1746년에 프리드리히 2세가 감자먹기 운동을 일으킨 1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왕은 독일인들이 감자를 먹기 시작한 것을 못보고 서거하였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난이 문제가 되자 감자 덕분에 해결이 되었다.

고구마가 감자보다 영양가가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섬유질과 미네랄 성분이 더 높다. 고구마는 벼농사가 되는 기후와 토질에 맞고, 감자는 기온이 낮은 유럽의 토질에 맞는다. 당분이 높은 것이 단점으로 주식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가을이면 종자고구마를 흙과 층층으로 섞어 가마니에 넣어서 방구석에다 세우고 누더기로 덮어서 다음해 봄까지 보관했다. 방이 너무 더우면 싹이 나오니까 불기운이 적은 윗목에 보관 되었다. 겨울 밤 긴긴밤에 배가 출출하면 씨 고구마를 몰래 끄집어내어 깎아 먹기도 했다.

“종자 고구마 하나 먹으면 고구마 1관 먹는 것과 같은 기라.” 1관은 3.75Kg이라고 설명해 주시면서 아버지는 너그럽게 나를 쓰다듬으셨다. 엊그제 일같이 생생하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미 30년 전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씨 고구마가 담긴 화분을 정원의 꽃들 사이에 두고 물을 주고 정성스레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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